① 사카타에서 의성까지 — 10년 뒤 그 마을
② 744 vs 89, 살아남은 자치체의 공통 DNA
③ 10조 엔과 5조 원 — 어디로 갔나
④ ‘막기’에서 ‘잘 줄어들기’로
인구를 늘리지 않고도 도시가 살 수 있을까요? 도쿠시마현 산골의 한 마을이 그 질문에 ‘창조적 과소(創造的過疎)’라는 말로 답했습니다. 가미야마정(神山町)입니다. 마을 슬로건은 ‘인구를 늘리는 게 아니라, 줄어드는 인구의 질을 바꾼다’. 1995년에서 2020년 사이 인구가 7,000명대에서 5,000명대로 줄었지만, 가미야마는 ‘소멸 회피’를 정책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2010년 가미야마는 광케이블을 전 가구에 깔고 빈집을 정비해 도쿄·오사카 IT 기업에 위성사무소로 내놨습니다. 산산(Sansan), 플랫이즈(Plat Ease) 같은 회사가 들어왔고, 2010년대를 거치며 위성사무소 16개사가 둥지를 텄죠(TURNS 등 보도). 2010년대 후반엔 가미야마 사상 처음으로 ‘사회동태 인구증(社会動態 人口増)’을 한 해 동안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2024년 보고서에서 가미야마는 여전히 ‘소멸가능성 자치체’ 명단에 있지만, 같은 도쿠시마현의 다른 자치체들과 비교하면 청년여성 감소 속도가 완만한 곡선을 그립니다.
일본이 먼저 닦은 세 갈래
가미야마 — 일이 먼저, 사람이 다음. 가미야마의 답은 ‘일을 먼저 옮긴다’입니다. 이주자에게 ‘와서 살라’ 권하지 않고, ‘여기 일이 있다’를 먼저 보여줬죠. 16개 안팎의 위성사무소를 통해 외부에서 들어와 일하는 IT·디자인 인력이 마을의 일과 풍경을 바꿨습니다. 밖에서 보면 ‘산골 IT 마을’이지만, 안에서 보면 ‘일이 있어 살게 된 마을’입니다.
아마정 — 교육이 먼저, 청년이 다음. 시마네현의 외딴 섬 아마정(海士町)은 다른 길을 닦았습니다. ‘고교 매력화 프로젝트’의 시작은 2008년도 입학생 28명에서 출발합니다. 섬의 유일한 고교 ‘오키도젠고’를 도쿄·오사카 학생도 지원할 수 있는 ‘섬 유학’ 학교로 재설계했죠. 2010년대를 거치며 입학생이 늘었고, 외부에서 지원해 입학하는 학생 비중이 절반을 넘기도 했습니다. 학교가 살아나니 주변 음식점·기숙사·체험관광업이 살아났고요. ‘없는 것이 없다(ないものはない)’가 도시의 슬로건입니다.
가미카쓰 — 환경이 먼저, 정체성이 다음. 도쿠시마현의 또 다른 마을 가미카쓰정(上勝町)은 어땠을까요? 2003년 일본 자치체 가운데 처음으로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인구 약 1,400명대의 작은 마을이 한 일이라곤 쓰레기를 40여 종으로 쪼개 분류한 것. 그걸로 일본 환경성 표창을 받았죠. 더 놀라운 건 ‘잎사귀 비즈니스(つまもの)’입니다. 80대 할머니들이 산에서 딴 나뭇잎을 요릿집 장식용으로 팔아 한때 연 매출 2.6억엔, 지금도 2억엔 안팎을 만들거든요. 인구가 줄어도 정체성이 또렷해지면 도시는 안정된 모양을 가질 수 있다 — 가미카쓰가 보여준 답입니다.
한국에서 자라는 답
그럼 한국은요? 행안부가 2024년 ‘우수 인구감소지역’으로 꼽은 8곳의 사업계획서를 펴 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보입니다. 가미야마·아마정·가미카쓰의 답이 조각조각 한국으로 옮겨와 있거든요.
신안 — 환경을 인구로 바꾸는 실험. 전남 신안군은 ‘햇빛연금’을 운영 중입니다. 태양광 발전 이익의 일부를 군민에게 정기 지급하는 모델로, 2024년 군 발표 기준 1인당 연 50만원 안팎이 지급됐죠. 가미카쓰가 ‘환경 정체성으로 인구 감소를 안정화’했다면, 신안은 ‘환경 자원을 직접 인구의 지갑에 옮기는’ 답을 만들었습니다. 일본에도 정확히 대응되는 모델이 없죠.
하동 — 의료가 먼저, 정주가 다음. 경남 하동군은 2025년도 지방소멸대응기금 우수지역 8곳에 선정되면서 무엇을 핵심 사업으로 내걸었을까요? ‘지역 공공의료 인프라 조성사업’이었습니다(행안부 정책브리핑 2024.11). 왜 하필 의료냐고요? 산골 자치체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게 청년의사·산부인과·소아과거든요. 병원이 없으면 청년이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까요. 가미야마의 ‘일’, 아마정의 ‘교육’에 ‘의료’ 한 축을 더한 셈입니다. 이게 한국식 답이죠.
단양 — 생활인구로 정의를 바꾸기. 행안부가 2024년 1월 처음 공표한 ‘생활인구 산정 결과’의 첫 시범 7개 인구감소지역은 충북 단양, 충남 보령, 강원 철원, 전남 영암, 경북 영천, 전북 고창, 경남 거창이었습니다. 단양은 도담삼봉·만천하스카이워크 관광객 흐름에 월 단위 체류 프로그램까지 운영하면서, 시범 산정 결과 중 큰 ‘체류인구 갭’을 보이는 자치체 중 하나로 꼽혔죠. 한국이 ‘오는 사람’을 셀 수 있게 된 첫 사례입니다. 강원 횡성도 워케이션 거점으로 같은 모델을 확장 중이고요.
[냉정하게 짚기] 이 성공 사례들을 그대로 ‘정책이 만든 결과’로만 읽으면 미화가 된다. 가미야마는 도쿠시마 공항·고속도로 접근성과 정비할 빈집이라는 사전 조건이 있었고, 아마정은 ‘섬’이라는 폐쇄성이 오히려 유학 브랜드가 됐다. 고흥·신안은 기금 말고도 스마트팜·태양광 같은 고유 자원이 받쳤다. 무엇이 ‘정책 효과’이고 무엇이 ‘원래 조건’인지 분리해야, 다른 지역이 실제로 따라 할 수 있는 부분이 드러난다.| 사례 | 정책으로 바꾼 것 | 원래 갖고 있던 조건 | 다른 지역이 가져갈 것 |
|---|---|---|---|
| 가미야마 🇯🇵 | IT 위성사무소 유치 | 공항·고속도로 접근성, 빈집 | ‘일 먼저’ 정착 모델 |
| 아마정 🇯🇵 | 고교 매력화·섬 유학 | 섬의 폐쇄성 → 브랜드화 | 교육으로 청년 유입 |
| 가미카쓰 🇯🇵 | 제로웨이스트 정체성 | 작은 규모·산촌 | 정체성으로 정착 |
| 신안 🇰🇷 | 햇빛연금(분배) | 태양광 입지·섬 | 환경자원 → 주민 소득 |
| 하동 🇰🇷 | 공공의료 인프라 | 광양만권 인접 | 의료로 정주 잇기 |
| 단양 🇰🇷 | 생활인구 전략 | 관광지(도담삼봉) | 체류인구 설계 |
‘어디가 잘했나’보다 ‘내 지역도 할 수 있나’가 핵심이다. 성공은 정책 효과와 원래 조건을 분리해야 따라 할 수 있다.
이미지(전부 실사) — 아마정 도서관(ⓒAsturio Cantabrio)·단양 도담삼봉(ⓒKen Eckert)·가미야마 온천센터·하동 섬진강 CC BY-SA · 가미카쓰 제로웨이스트센터 CC0 · 신안 천사대교 PD. Wikimedia Commons
위에서 내 지역의 강점을 하나 고르면, 그 조건으로 답을 만든 도시와 ‘가져갈 교훈’을 보여드립니다.
스마트 쉬링킹: 다섯 가지 점검표
그렇다면 다음 5년,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일본 10년과 한국 5년의 점검을 한자리에 모으면 권고 다섯 가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시리즈가 추적한 모든 도시 — 사카타·가즈노·의성·고흥·가미야마·아마정·가미카쓰·신안·하동·단양·횡성 — 가 각자 다른 길을 걸었지만, 그 길들이 한 곳을 가리키더군요. 그 공통 교훈에서 뽑은 항목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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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단위는 최소 5년 — 청년이 자리잡는 시간만큼
한국 지방소멸대응기금의 ‘3년 단위’ 룰은 단기 시설사업으로 자금을 밀어낸다. 가미야마 16개 위성사무소도 평균 6–8년의 정착기를 거쳤다. 사업 단위를 5–7년으로 늘리면서 중간평가는 매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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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직접 효과’를 1차 평가지표로
예산 집행률·사업 완수율이 아니라 ‘청년여성 인구 증감’과 ‘생활인구 갭’이 1차 KPI여야 한다. 양국 모두 현재 평가표가 ‘인구가 어떻게 움직였나’보다 ‘예산이 어떻게 흘렀나’에 무게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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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신축 비중을 줄이고 운영비·인건비 비중을 키우기
양국 모두 사업비 중 시설 신축 비중이 다른 항목을 압도한다. 시설은 1회 예산으로 끝나지만 운영은 매년 새 예산이 필요하다. 빈 건물을 짓지 말고, 빈 건물을 활용하는 사업과 사람을 두는 사업에 가중치를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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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인구·생활인구를 통계와 예산의 단위로
한국 행안부는 2023년에 ‘생활인구’ 개념을 도입하고 2024년 1월 첫 시범 산정 결과를 공표했다. 다음 단계는 이 숫자를 교부세 산정과 지방소멸대응기금 배분 산식에 직접 넣는 것. 일본의 ‘관계인구’ 정책도 같은 방향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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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기초 자금 이체 룰을 단순화
나라살림연구소를 비롯한 다수 연구는 ‘광역을 거쳐 기초로 내려가는 행정 시차’가 기초자치체 집행률을 떨어뜨리는 핵심 원인이라고 지적해 왔다. 광역의 25%·기초의 75% 배분 룰을 ‘기초 직접 배분’ 옵션으로 보완해야 한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시한폭탄이 있습니다. 2031년이면 지방소멸대응기금이 끝납니다. 애초에 10년 한시 기금이거든요. 시설은 그 돈으로 지었지만, 운영비·인건비·유지보수는 해마다 새로 나와야 합니다. 기금이 멈춘 뒤 누가 그 청년센터와 의료 거점을 굴릴 것인가 —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잘 줄어들기’는 5년짜리 반짝 사업으로 끝납니다. 짓는 것보다 ‘이어가는 것’의 설계가 다음 5년의 진짜 숙제인 셈이죠.
‘소멸’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마지막으로 단어 하나를 짚고 가야겠습니다. ‘소멸’. 마스다 히로야가 2014년 이 말을 처음 꺼낸 순간부터, 일본의 농산촌 자치체장들은 그 단어와 싸워야 했거든요. 내 고향이 ‘사라질 곳’으로 호명되는 일, 어떤 기분일까요? 후속 보고서가 2024년 나왔을 때 일본 농업신문은 한 줄로 못 박았습니다. ‘소멸이라는 호명이 도시에 가져온 상흔도 함께 계측되어야 한다.’ 한국은 일본보다 약 7년 늦게 같은 단어를 받았습니다. 그 단어를 어떻게 쓸 것인가 — 이건 다음 5년의 정책만큼이나 중요한 ‘문화의 일’입니다.
‘사라지는 자치체라는 말은 정책의 시계를 빠르게 돌리지만, 도시 안에 사는 사람을 빠르게 지치게 한다. 단어를 도구로 쓰되, 도구로만 다뤄야 한다.’ — 시마네현 아마정 종합전략실, 2024 인터뷰
줄어드는 도시에서 ‘잘 줄어들기’를 택한다는 건, 줄어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아닙니다. 줄어드는 도시 안에서도 살아 있는 시간이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는 일이죠. 사카타는 ‘덜 줄어들기’로, 가미야마는 ‘일로 다시 묶기’로, 아마정은 ‘바깥에서 학생을 부르기’로, 가미카쓰는 ‘정체성으로 정착하기’로, 신안은 ‘환경을 지갑으로 바꾸기’로, 하동은 ‘의료로 정주를 잇기’로 각자의 답을 만들었습니다. 답의 다양성 그 자체가, 정답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첫 번째 증명입니다.
아시아24의 약속
이 4부작을 닫으며, 아시아24는 다음 5년 뒤(2031) 같은 도시들을 다시 찾아 한일 동시 점검을 반복할 것을 약속합니다. 사카타와 가즈노, 의성과 고흥, 가미야마와 신안의 변화는 5년 뒤 다시 측정되어, ‘잘 줄어들기’가 정책의 언어로 자리잡았는지를 묻겠습니다.
다음 점검: 2031년 — 「사라지는 지자체 — 한일 10년 점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