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_사라지는 지자체, 한일 동시 점검
① 사카타에서 의성까지 — 10년 뒤 그 마을
744 vs 89, 살아남은 자치체의 공통 DNA
10조 엔과 5조 원 — 어디로 갔나
‘막기’에서 ‘잘 줄어들기’로

당신이 사는 도시는 10년 뒤에도 거기 있을까요? 일본은 2014년에 이 질문을 처음 숫자로 던졌습니다. 인구학자 마스다 히로야가 ‘소멸가능성 도시’ 896곳의 명단을 발표한 거죠. 그로부터 10년 뒤인 2024년 4월, 후속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명단은 744곳으로 줄었고, 239곳이 빠져나갔고, 99곳이 새로 들어왔습니다. 예측이 아니라 ‘결과’가 처음 나온 셈입니다.

그 명단의 안과 밖을 가른 건 뭘까요? 결론을 먼저 귀띔하면, ‘소멸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떻게 줄어드느냐’였습니다. 같은 위도, 같은 명단에 찍혔던 네 도시 — 일본 사카타·가즈노, 한국 의성·고흥 — 를 같은 자에 올려놓고 따져봤습니다.

야마가타현 사카타시의 옛 거리 스가타미 골목 풍경
야마가타현 사카타시의 옛 거리. 모가미강 하구에 자리한 인구 9만 명대 도시로, 2014년 ‘소멸가능성 도시’ 명단에 올랐다가 10년 뒤 감소 곡선이 호전됐다. [사진 | Wikimedia Commons · さかおり, CC BY-SA 4.0]
네 도시검증된 핵심 수치택한 답
사카타 🇯🇵명단 잔류·곡선 호전2020 청년여성 7,745명덜 줄어들기
가즈노 🇯🇵명단 잔류·곡선 가파름청년여성 비중 5.9%잘 줄어들기
의성 🇰🇷소멸위험 최고위험권지수 0.11 · 기금 354억정책으로 시간 사기
고흥 🇰🇷정책 평가 S등급2년 248억 · 집행률 0% 역설관계로 다시 쓰기

같은 시간을 통과한 네 도시, 그러나 곡선도 답도 제각각이다. 아래에서 하나씩 들여다본다.

▶ 카드를 클릭하면 도시별 검증 수치와 출처가 펼쳐집니다. · 사진(전부 실사) — 사카타(さかおり)·의성 마늘창고(ⓒRobert)·가즈노 尾去沢광산(ⓒTakisaw) CC BY-SA · 고흥 나로우주과학관(공공누리1). Wikimedia/공유마당.

사카타: 명단을 ‘빠져나간’ 게 아니라 ‘속도를 늦춘’ 도시

야마가타현 사카타시(酒田市).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세 시간, 다시 갈아타고 동해 쪽으로 한 시간 반을 가야 닿는 곳입니다. 사카타는 2014년 마스다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럼 10년 뒤엔 어떻게 됐을까요?

흔히 ‘사카타는 명단에서 빠져나왔다’고 알려졌지만, 정확하지 않습니다. 사카타시청이 2025년 2월 펴낸 자료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消滅可能性自治体に変わりはない(소멸가능성 자치체라는 사실에 변함은 없다)’. 사카타는 9분류 중 ‘C-2’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가 달라졌죠. 청년여성 인구가 줄어드는 속도입니다. 시 자료에 적힌 2020년 20~39세 여성 인구는 7,745명. 같은 시기 다른 명단 도시들이 두 자릿수 %씩 청년여성을 잃을 때, 사카타는 그보다 완만한 곡선을 그렸습니다. 줄긴 줄었다, 다만 ‘덜 줄었다’ — 이게 명단 안에서 호전했다는 말의 정확한 뜻입니다.

[※참고: ‘소멸가능성 자치체’는 2020→2050년 20~39세 여성 인구가 50% 이상 줄 것으로 추계된 시·정·촌을 말한다. 일본 전체 1,729곳 중 744곳(43%)이 여기 해당한다.]
셔터 내린 거리 — 줄어듦은 풍경으로 먼저 온다. [영상 | AI 생성 시네마틱]

가즈노: 같은 아키타, 그러나 더 가파른 곡선

사카타에서 동쪽으로 한 시간 반. 아키타현 가즈노시(鹿角市)는 어떨까요? 2024년 1월 주민기본대장 기준 인구 27,714명. 그중 20~39세 여성은 약 1,627명, 전체의 약 5.9%입니다. 일본 전국 평균이 10%대인 걸 감안하면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죠.

가즈노가 속한 아키타는 일본에서 가장 가혹한 도道입니다. 도내 25개 자치체 중 24곳, 96.0%가 소멸가능성 자치체 — 전국 도도부현 1위입니다. 반대편 끝엔 오키나와가 있습니다. 소멸가능성 자치체 비율 0%. 같은 일본 안에서도 ‘가즈노의 시간’과 ‘오키나와의 시간’은 완전히 다른 지형 위에 놓여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가즈노는 손을 놓았을까요? 그런데 시청에서 들리는 말은 패배의 언어가 아닙니다. 시의 정책은 ‘인구를 늘리겠다’가 아니라 ‘줄어드는 인구를 전제로 행정을 다시 짜겠다’ 쪽에 무게를 둡니다. 노인 한 명당 의료 접근 거리를 줄이고, 빈집을 묶어 단지로 만들고, 학교 통폐합 이후 시설을 재배치하는 일. 인구를 다시 불리는 게 아니라, 줄어든 인구가 살 만한 도시를 다시 그리는 겁니다. ‘소멸 회피’가 아니라 ‘소멸의 속도와 모양’을 다루는 게 정책의 언어가 된 셈이죠.

의성: 소멸위험 최고위험권인데, 정책 평가는 상위권?

현해탄을 건너 한국으로 와도 풍경은 닮아 있습니다. 경북 의성군의 소멸위험지수(한국고용정보원)는 0.11. 전국 시·군·구 가운데 가장 낮은 축, 곧 소멸위험이 가장 높은 ‘최고위험권’이라는 뜻입니다. 숫자를 풀면 이렇습니다. 65세 이상 인구가 20~39세 여성의 약 9배. 젊은 여성 한 명에 노인 아홉 명이 얹혀 있는 도시라는 얘기죠. 의성군의 주민등록인구는 2025년 3월 기준 48,456명. 5만 명 선이 끝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같은 의성이 ‘정책 평가’에선 정반대 성적표를 받거든요. 행안부 지방소멸대응기금 평가에서 의성군은 2022년부터 3년 연속 상위 등급을 받아 국비 354억원(90+120+144)을 확보했습니다. 단일 자치체 누적으로 최상위권입니다.

어떻게 ‘인구로는 최고위험권, 정책으로는 우등생’이 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정책의 시간표가 인구의 시간표를 못 따라가는 겁니다. 의성은 청년·이주 관련 사업을 기금의 핵심 과제로 잘 묶었지만, 그 사업들이 도시 전체의 청년여성 곡선을 끌어올릴 만큼의 ‘양’엔 닿지 못합니다. 정책은 잘 만들어졌고, 인구는 그보다 빨리 빠져나갑니다.

고흥: ‘잘 줄어들기’의 한국식 번역, 그리고 한 줄짜리 역설

그럼 모범생은 따로 있을까요? 전남 고흥군이 또 다른 답을 내놓습니다. 2026년도 지방소멸대응기금 평가에서 받은 성적은 ‘S등급’. 직전 2년치까지 합하면 248억원으로, 전남 최상위권입니다. 그런데 평가위원회가 점수를 더 준 이유가 흥미롭습니다. 사업 하나하나가 아니라 ‘연계성’이었거든요. 청년 공공임대주택, 스마트팜 혁신밸리, 소록도 관광 재구성, 생활인구 전략 — 흩어진 사업이 아니라 한 묶음으로 엮여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고흥의 우등생 성적표엔 한 줄짜리 역설이 따라붙습니다. 나라살림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고흥군은 2024년 기금 집행률이 0%로 잡힌 11곳 중 하나였습니다. 어떻게 S등급인데 집행률 0%일까요? 예산 배정이 늦어지자 군비를 먼저 투입해 사업을 굴린 탓입니다. 실제 사업은 진행됐는데 ‘기금 집행률’만 0이 된 거죠. 평가 등급은 S, 집행률은 0 — 한국 지방소멸 정책의 평가 지표가 무엇을 못 보는지, 한 도시가 동시에 보여줍니다.

[취재 보강 예정] 이 자리에는 네 도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어갑니다 — 고향을 떠난 청년여성, 남아서 마을을 지키는 고령 주민, 다시 돌아온 귀촌 청년, 그리고 현장의 기금 담당 공무원. 숫자가 가리키는 방향을 그들의 언어로 다시 확인합니다. (가짜 인용 대신, 실제 현장 인터뷰로 채울 자리입니다.)

네 도시를 잇는 한 줄

정리해 볼까요. 사카타(명단 안·곡선 호전), 가즈노(명단 안·곡선 가파름), 의성(인구는 위험 최고권·정책은 상위권), 고흥(같은 명단·가장 유연). 네 도시가 같은 시간을 사는데 곡선이 다 다릅니다.

공유하는 건 한 가지입니다. ‘소멸이냐 아니냐’라는 양자택일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 줄어드는 도시는 줄어드는 도시 안에서 어떻게 살아 있을지를 ‘선택’합니다. 사카타는 ‘덜 줄어들기’로, 가즈노는 ‘잘 줄어들기’로, 의성은 ‘정책으로 시간 사기’로, 고흥은 ‘관계로 인구의 정의 다시 쓰기’로. 명단의 안과 밖을 가르는 선은 이제 행정의 선이 아니라, 도시 자신이 고른 답의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그 ‘답의 모양’은 어떤 변수로 결정될까요? 일본 자립지속가능성 65곳과 한국 인구감소지역 89곳 전체로 시야를 넓혀, 살아남는 도시의 공통 DNA를 네 개의 축으로 분해해 봤습니다. 이 이야기는 연작 ② ‘744 vs 89’에서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