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_사라지는 지자체, 한일 동시 점검
사카타에서 의성까지 — 10년 뒤 그 마을
744 vs 89, 살아남은 자치체의 공통 DNA
③ 10조 엔과 5조 원 — 어디로 갔나
‘막기’에서 ‘잘 줄어들기’로

돈은 충분히 썼습니다. 일본은 10년에 10조 엔 안팎, 한국은 5년에 약 4.75조 원. 그런데 효과가 있었을까요? 2026년 배분까지 더하면, 한국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처음으로 5년치(2022–2026)가 채워집니다. 2022년 7,500억원으로 시작해 4년 연속 1조원씩 — 누적 약 4.75조원입니다. 같은 해 일본은 마스다 레포트 12년차이자 인구전략회의 후속 보고서 2년차의 점검 시점에 서 있죠. 두 나라 모두, ‘다음 5년’에 쓸 돈을 어떻게 설계할지 결정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결산표의 첫 줄부터 이상합니다. 돈을 그렇게 썼으면 사람이 늘었을까요? 그걸 보여주는 줄이 없습니다. 양국 모두 ‘인구 직접 효과’를 1차 평가지표로 두지 않은 채 5~10년을 흘러왔거든요. 한국 행안부와 나라살림연구소가 펴낸 사업 내역을 뒤져봐도, 사업이 청년여성 인구 곡선이나 출산율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직접 보여주는 통계는 정부 자료 안에 거의 없습니다. 일본 지방창생교부금 평가도 같은 약점을 안고 있죠. 평가의 잣대가 ‘예산 집행률’과 ‘사업 완수율’에 맞춰져 있는 탓입니다. 얼마나 썼나는 따지는데, 사람이 남았나는 묻질 않은 셈입니다.

집행률만 봐도 병목은 드러납니다. 나라살림연구소 집계 기준 2024년 지방소멸대응기금 광역 집행률은 91.6%였지만, 정작 돈이 닿아야 할 인구감소지역 기초 집행률은 31.9%에 그쳤습니다. 더 앞선 2022년 배분분은 2023년 6월까지 기초 집행률이 18.85%(배분 5,606억 중 집행 1,057억)에 머물렀고요. 다만 이 ‘집행률’ 지표 자체에 함정이 있습니다. 광역이 기초로 재원을 통째 넘기면 광역 집행률은 100%로 잡히고, 고흥군처럼 군비를 먼저 투입해 사업을 굴린 곳은 기금 집행률이 0%로 잡히거든요(집행률 0% 11곳). ‘얼마나 썼나’가 ‘무엇이 됐나’를 가리는 구조입니다.

2024년 지방소멸대응기금 집행률 · 나라살림연구소 집계
광역
91.6%
기초·인구감소지역
광역은 거의 다 썼는데, 정작 돈이 닿아야 할 기초에선 3분의 1만 집행됐다. 돈이 멈추는 지점이 한눈에 보인다.
예산은 어디서 멈추나 — 국비가 흘러 ‘기초’에서 막히는 모습. 입자 하나가 집행 흐름 한 갈래다.
광역 집행91.6%
기초 집행31.9%
국비 4.75조원은 광역 25% · 기초 75%로 배분된다. 그런데 광역은 91.6%가 집행되는 동안, 기초는 31.9%만 통과하고 나머지는 ‘미집행’으로 고인다 — 정작 돈이 닿아야 할 곳에서 멈춘다. 출처: 나라살림연구소 집계.
양국 모두 사업비의 적지 않은 몫이 청년창업센터·관광안내센터 같은 시설 신축으로 흘렀다. 짓는 데엔 돈이 들어갔지만 운영비가 따라가지 못한 사례가 반복됐다. [영상 | AI 생성 시네마틱]

두 회계의 모양

한국 · 지방소멸대응기금 5년 누적

4.75조 원

2022년 7,500억 + 2023–2026년 각 1조원. 광역 25% · 기초 75% 배분 룰. 한국지방재정공제회가 평가·배분 사무를 위탁받아 운영. 매년 평가에 따라 우수 기초에 배분이 가중된다.

그럼 돈은 어디서 샜을까요? 두 회계 모두 ‘새는 자리’가 신기하게 닮았습니다. 첫째, 사업 단위가 짧습니다. 한국은 ‘3년 단위’가 표준, 일본도 ‘1–2년 단위’ 사업이 많았죠. 청년 정착은 보통 5–10년이 걸리는데, 정작 사업의 호흡은 그보다 짧습니다. 둘째, ‘건물’로 흘러갔습니다. 청년창업센터, 관광안내센터, 홍보관, 컨퍼런스홀 — 양국 보도와 학회 자료에 같은 종류의 시설 이름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셋째, 운영비가 따라가지 못합니다. 시설은 1회 예산으로 ‘짓고 끝’이지만, 운영은 매년 새 예산이 필요하죠. 5년차가 되면 운영비를 댈 본예산이 없습니다.

작동한 항목: 한일이 같은 모양으로 답한 곳

실패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결산표엔 ‘작동한 항목’이 양국 모두에 한 칸씩 빛납니다. 그 이름조차 닮았죠.

일본 후루사토납세 — 9.2조 원의 ‘세금 환류’. 일본은 2008년 후루사토납세(고향납세)를 도입했습니다. 거주지 지방세 일부를 ‘고향’ 자치체에 옮겨 낼 수 있게 한 제도죠. 답례품이 더해지며 폭발적으로 컸습니다. 2023년도(令和5年度) 모금액은 1조 1,175억엔(약 9.2조원, 환율 100엔 ≒ 820원 기준). 일본 농림수산성 한 해 예산의 절반을 넘는 액수입니다. 단일 사업으로 보면 일본 지방창생사 10년에서 가장 큰 ‘성공’으로 꼽힙니다.

한국 고향사랑기부 — 같은 모양, 1/140의 규모. 한국은 2023년 1월 1일 고향사랑기부제를 시행했습니다. 후루사토납세를 그대로 옮긴 제도죠. 2023년 모금액은 약 650억 2천만 원(행안부). 일본 한 해 모금의 약 1/140 수준입니다. 답례품 한도(30%), 1인당 상한(연 500만원), 법인 참여 불가 등 한국 측 빗장이 더 좁기 때문이죠.

비교 항목한국 고향사랑기부
시작2008년2023년
2023년도 모금약 1조 1,175억엔약 650억 2천만원
개인 기부 상한주민세 공제한도 기준 (고소득자에 유리)연 500만원
법인 참여가능 (기업판 후루사토납세)불가
답례품모금액의 30% 한도모금액의 30% 한도
플랫폼민간 40여 개 경쟁공공(고향사랑e음) 중심, 민간 확대 중
연간 모금액 — 후루사토납세 vs 고향사랑기부 (2023년도)
일본 후루사토납세
한국 고향사랑기부
약 650억 원 · 일본의 1/140
같은 제도를 옮겼지만 출발의 크기가 140배 차이 난다. 한국 막대가 거의 보이지 않는 게 핵심이다. (2024년 879억으로 +35% 증가 중)

다만 물줄기가 보이기 시작한 것도 사실입니다. 행안부 집계에 따르면 고향사랑기부는 2024년 879억 원으로 전년보다 약 35% 늘었고, 전남 188억·경북 104억·전북 93억 원처럼 지방으로 흐르는 흐름이 윤곽을 드러냈거든요. 출발의 크기는 일본의 1/140이지만, 증가 속도는 한국이 가파릅니다. 제도의 빗장(법인 참여·기부 상한)을 어디까지 풀지가 다음 5년의 변수죠.

디지털전원도시국가구상 — 한국에 대응항이 없는 모델. 일본의 두 번째 ‘작동 항목’입니다. 2021년 11월 출범 이후 광케이블 보급, 원격의료·원격교육·원격행정 시스템 표준화에 자금이 들어갔죠. 정확한 누적 집행액은 내각부 자료에서도 어느 회계연도·범주를 합하느냐에 따라 4–6조 엔을 오가지만, ‘지방 자치체의 디지털 인프라 격차’를 메운 효과 자체는 일본 총무성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소멸 회피’는 못 했어도 ‘소멸 속도 완화’엔 명확히 기여했다는 게 일본 학계 다수설이죠.

그럼 한국엔 이걸 받아칠 사업이 있을까요? 정확히 짝지을 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디지털 뉴딜(2020), 디지털 플랫폼 정부(2022–)가 비슷한 자리에 서 있긴 합니다. 하지만 둘 다 ‘지방 인구감소 자치체’를 1차 타깃으로 삼은 사업은 아니거든요. 두 정부 사업의 공식 추진계획서를 일본 디지털전원도시국가구상 추진계획서와 항목별로 나란히 놓고 보면, ‘인구감소 자치체 직접 지원’ 항목의 분량부터 양국이 뚜렷이 갈립니다. 일본은 그 자리를 한 사업으로 채웠고, 한국은 여러 사업에 흩어 놓은 셈이죠.

지어는 놓았지만 — 운영비가 따라오지 못한 시설들. [영상 | AI 생성 시네마틱]

돈만 흐른 항목: 두 나라가 닮은꼴

실패한 자리에서도 두 나라는 데칼코마니에 가깝습니다. 건물은 올라갔는데, 사람은 안 왔다 — 양국에서 같은 보고가 나오거든요. 한국 사업 내역을 펼쳐 보면 청년창업센터·관광안내센터·문화관 같은 ‘시설 신축형’이 사업비의 적지 않은 몫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 시설들이 얼마나 돌아가는지, 가동률·이용률은 정부 자료 어디에도 일관되게 공개되지 않죠. 일본 지방창생교부금 평가에서도 똑같은 약점이 지적됩니다.

구조적 이유는 같습니다. 시설은 1회 예산으로 ‘짓고 끝’이지만 운영은 매년 새 예산이 필요하죠. 같은 자치체가 다음 공모에서 ‘운영비 보조’를 신청해도, 양국 평가표 모두 운영비보다 ‘신규 사업·신규 시설’에 점수가 더 붙는 구조입니다. 건물은 남고 사람은 빠집니다.

‘지방창생을 평가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한 자치체에 들어간 자금이 그 자치체의 인구 곡선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인과적으로 분리해 측정하는 일이다. 평가 자체가 정책의 핵심 과제다.’ — 일본 내각부 지방창생추진사무국, 「지방창생관계교부금 사업 평가 운용 자료」(2024)

5년 뒤를 향한 권고

한일 양국의 결산표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짓는 사업’의 비중은 줄이고, ‘움직이는 자금’의 비중은 늘려야 한다. 후루사토납세·고향사랑기부처럼 도시 사이를 흐르는 자금, 디지털전원도시처럼 ‘들어와도 살 수 있게 하는’ 인프라, 그리고 평가의 1차 지표를 청년여성 인구 증감으로 다시 잡는 일이죠.

한국 학계와 행안부 산하 연구기관에서 반복해 나오는 권고를 종합하면 네 가지입니다. △ 사업 단위를 3년에서 5년 이상으로 △ ‘인구 직접 효과’를 1차 평가지표로 △ 시설 신축 비중을 줄이고 운영·인건비 비중을 키우기 △ 광역–기초 자금 이체 룰 단순화. 이 권고들이 2027–2031년 후반기 회계에 어디까지 반영될지가, 한국 지방소멸대응기금 다음 5년의 분기점이 됩니다.

그럼 이 분기점을 먼저 통과해 본 도시들은 어떤 답을 만들었을까요? 연작 ④ ‘막기에서 잘 줄어들기로’에서 가미야마·아마정·가미카쓰의 일본식 답과 신안·하동·단양의 한국식 답으로 시리즈를 닫습니다.